레이오버 일기

호텔에서 지내는 것이 싫은 이유

fast airplane 2023. 5. 3. 07:59

승무원으로 일하다보면 호텔에서 지내는 것을

어느 정도 직업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걸 알면서도

난 호텔이 정말 너무 싫다.

 

한국에서 유행하는 호캉스가

정말 이해 안가는 부류가 아마 승무원들일 것 같다.

왜 집을 놔두고 돈내고 짐싸서

호텔에 가서 굳이 자려고 하는 건지...

그게 기분 전환이 되는 건가?

 

예전에도 호텔이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요즘들어 그 생각이 아주 많이 심해졌다.

그냥 호텔살이 자체가 너무 너무 싫다.

 

 

1. 호텔의 위생 상태는 결코 깨끗하지 않다.

불특정 다수가 사용하는 곳을 깨끗하게 유지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호텔은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곳만 "그나마" 깨끗하다고 보면 된다.

구석 구석 살펴보면 묵은 먼지는 말할 것도 없고

매일 갈아야할 것 같은 침구류도 더러운 경우가 아주 많다.

문제는 자고 일어나서 보면

침구류가 더럽다는 걸 깨닫는 경우가 많다는 거...

낡고 오래된 카펫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도 너무 싫고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도 너무 싫다.

예전에 5성급 특급 호텔에서도

양치질할 때 쓰는 유리컵을 변기솔로 닦더라는

뉴스를 본 것 같은데... 그게 결코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대부분의 호텔이 그렇다고 보면 된다.

 

물론, 가끔 리모델링을 새로해서 방이며 가구들이

정말 깨끗한 호텔에 머무는 경우도 있긴 있다.

10번에 한 번 될까말까 한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2. 유독 미국 호텔에서 많이 일어나는 일로

밤샘 비행을 마치고 아침부터 정신없이 자고있는데

다들 체크아웃하는 시간인 오전 8시-11시 사이에

청소하는 사람들이 깔깔대며 복도에서 떠드는 소리...

게다가 다들 외국인들이 대부분이라

알 수 없는 언어로 떠드는데 그게 정말 크게 들린다.

정말 너무하다 싶어 프론트 데스크에 전화해서 항의한 적도 여러 번이다.

정말 프로페셔널리즘이라곤 1도 찾아볼 수가 없는 곳이

호텔 직원들인 것 같다.

 

3. 서너 번에 한 번은 꼭 일어나는 일.

체크인하면서 방 키를 받아 짐을 끌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방에 들어가려는데 키카드가 작동을 안함.

그래서 그 짐을 다 끌고 다시 내려가서

다시 방 키를 받을 때마다 사과하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아니, 본인이 실수를 했는데

사과는 커녕 친절하지 조차 않은 모습들...

서비스 마인드라고는 단 1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새로 받은 키로 짐을 다시 끌고 방으로 가면

그 키가 또 작동을 안한 적도 여러번.

뭐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 것 같다.

 

4. 침대에 앉자마자 푹 꺼지는 매트리스가 정말 싫다.

보통 매트리스 수명이 8년에서 길어야 10년 정도라고 하던데

호텔에선 불특정 다수가 쓰기 때문에

그보다 매트리스를 자주 바꿔야할 것 같지만

평균적으로 얼마만에 매트리스를 교체하는지는

나로선 알 수가 없다.

저 정도로 푹 꺼지는 매트리스는

적어도 10년은 넘었을 거라 확신한다.

움직일 때마다 삐걱 삐걱 소리가 나는 매트리스들도 많고.

매트리스도 싫지만 언제 마지막으로 세탁했는지 모를

얇은 이불과 매트리스 커버도 싫은 건 마찬가지.

자고 일어났는데 매트리스가 편하고 좋다는 느낌을 주는

호텔은 정말 정말 드물다. 

그나마 베드벅만이라도 안나오면 다행인 건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호텔에서 자려고 하면

이상하게 온 몸이 가렵다.

 

5. 화장실 샤워기도 정말 비위생적인 곳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샤워기의 물때는 청소를 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미국 호텔들은 샤워기가 고정되어있는 곳들이 대부분이라

샤워할 때도 어찌나 불편한지... 휴우 너무 싫다 싫어.

나는 내 샴푸와 비누를 들고다니긴 하는데

가끔 호텔 샴푸를 쓰면 대부분 완전 싸구려 샴푸인지

머리가 엄청나게 뻑뻑해진다.

난 요즘 웬만해서는 짧게 머무는 호텔에서는 샤워도 안하게 된다.

찝찝하더라도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말지...

 

6. 호텔 방에 있는 에어컨이나 히터는

왜 그렇게 소음이 심한 건지...

여름이나 겨울에 안틀 수도 없고

덥고 습한 지방 (특히 플로리다)에서는

한겨울이 아니고서야

에어컨을 안틀면 방이 습해져서 안틀래야 안틀 수가 없는데

그 덜덜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밤새 잠을 설치는 경우가 너무 많다.

한 번은 겨울에 추운 어느 도시에 갔는데

히터 소리가 너무나 큰데다

내가 누워있는 침대로 히터 바람이 얼굴로 날려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

히터를 끄고 가져온 외투를 입고 덜덜 떨면서 잔 적도 있다.

 

7. 가끔 옆방과 연결문이 있는 호텔방을 받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시끄러운 사람들이 머무는 방을 받으면

그 소음에 또 엄청나게 스트레스가 된다.

연결문이 있는 방에 그렇게 소음에 취약할 줄이야...

한 번은 옆방에서 너무 심하게 시끄럽게 파티를 하길래

호텔 프론트에 전화를 해서 얘기했더니

프론트에서 그 방에 전화하는 소리까지 내 방에 다 들리더라...

 

꼭 연결문이 아니더라도

옆 방에서 티비 소리 들리는 건 이제 예사로 받아들일 정도.

호텔들이 정말 소음에 취약하다.

옆방에서 물 틀거나 샤워기 트는 소리까지

내 방에 다 들리는 경우도 정말 많다.

 

8. 난 호텔에서 제공하는 어매니티는 쓰지 않는다.

화장실 유리컵이나 헤어 드라이기부터 시작해서

커피 머신 (미국은 대체로 큐리그 커피 머신), 와인잔, 전기 주전자 등등

방에 구비되어있는 물건도 난 쓴 적이 없다.

그 위생 상태를 결코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건 양치질할 때 비닐에 포장된 일회용 컵 정도...

화장실에 있는 수건들도 찝찝해서 쓰기가 싫어

내 수건을 들고다녀야 하나 생각한 적도 있다.

 

9. 호텔 방 바닥 카펫에 더럽다는 건

익히 모두가 알고 있을 것 같다.

보통 한국이나 일본 호텔은 실내 슬리퍼를 구비하고 있는데

미국 호텔에선 거의 본 적이 없고

유럽 호텔에서도 슬리퍼를 제공하지 않는 곳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나는 늘 호텔에서 신을 슬리퍼를 챙겨 다닌다.

맨발로 호텔 바닥을 걸어다니는 것도 엄청나게 비위생적이니까.

 

10. 요즘은 거의 모든 호텔들이 no smoking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호텔방에서 흡연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금연인 기내에서도 몰래 담배피우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 얘긴 또 해보도록 하겠다)

가끔 방 문을 여는 순간 퀴퀴한 담배 냄새가 나는 방들이 있다.

오래된 호텔이라 예전에는 흡연방이었기 때문이었는지

아님 금연방인데도 룰을 어기고 흡연을 한 건지

내가 알 수는 없지만

그럴 때 난 또 방을 바꾸러 로비로 내려가야한다.

근데 이런 경우가 정말 심심찮게 있다는게 문제다.

 

한 번은 비행하고 너무 너무 피곤한데

열자마자 담배 냄새가 확 나는 방을 받았었다.

그 날 호텔에서 무슨 큰 컨퍼런스가 있었는지

로비에 사람들도 너무 많고 엘리베이터 타는데도 한참 걸려서

방 키 받는데도 정말 오래 걸렸었는데

또 다시 내려가서 방을 바꿀 생각을 하니

(게다가 바꾼 방에서 냄새가 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너무 힘들어서 안바꾸고 몇 시간있다가

냄새가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 결국에 짐 다 챙기고

또 내려가서 방을 바꾼 적도 있다.

 

호텔이 만석일 때에는 방을 바꾸고 싶어도

남는 방이 없어 못 바꾸는 경우도 생긴다.

그럼 담배 냄새 나는 방에서 하루를 지내야하는데...

휴우...

 

11. 내 경험상 보통 유럽이나 아시아 호텔들이

그나마 깨끗한 편이고

미국 호텔들이 제일 오래되고 지저분한데다 서비스도 엉망이다.

게다가 미국 호텔에서 가끔 아침을 제공한다고 해서

호텔 식당에 가면 음식들도 정말 허접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가짜 계란으로 만든 스크램블 에그,

냉동 식품 데워서 내놓는 싸구려 소세지, 베이컨

딱딱한 베이글, 식빵, 통조림 과일 등등...

 

12. 가끔 미국 호텔들 중에

로비의 천장은 뻥 뚫려있고

그 로비를 감싸는 형태로

방들이 있는 구조의 호텔들이 있는데...

문제는 이럴 때 저층에 있는 방을 받으면

로비에 있는 레스토랑이나 바에서

마시고 떠드는 소리가 방에 직접 바로 옆에 들린다는 거.

바깥을 볼 수 있는 창문도 없고.

도대체 이런 호텔을 설계한 건축가는

무슨 생각으로 설계를 한 걸까?

얼마 전에도 바로 이런 호텔 방에서 머물렀었는데

저녁 5시부터 밤 11시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는

식당에서 떠드는 소리에 정말 돌아버리는 줄 알았다.

새벽 4시에 픽업이라 3시엔 일어나야 하는데

잠을 거의 못잔 건 당연지사.

 

 

뭐 대충 생각나는 것만 좀 적어보았는데

정말 There is no place like home은 만고의 진리인 것 같다.

 

호텔에 가지 않아도 되는,

매일 매일 출퇴근하는 하루짜리 턴 트립만 하는 승무원들도 많은데

그 승무원들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승무원 일을 하면서

매일 매일 내 집, 내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